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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 아동성추행 사건, 문제제기한 교장은 파직되고 조사담당주교는 묵인하고...

by 아이바오이뻐이뻐 2024. 2. 6.

전 가톨릭 학교 교장인 그래엄 슬리먼

1980년대 피터 시어슨 신부의 아동 성추행건을 고발했습니다. 

또한 성직자의 성범죄에 혐오감을 느껴 사임했습니다. 

그런데 이 일로 그는 가톨릭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랐습니다. 

 

Holy Family Primary School(홀리패밀리초등학교)  / 아이원 프로퍼티

 

1980년대 중반 도브턴 Holy Family Primary School에서

아이들을 학대한 악명 높은 아동 성추행 사제, 피터 시어슨 신부를 고발하기 위해

교육자로서 존경받는 성공적인 경력 등 자신의 학교까지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교장은 말합니다.

"시어슨 신부, 그는 연쇄 성범죄자입니다. "

"시어슨 신부, 그가 마지막으로 선배 사제로 있던 선베리에서 아이들을 성추행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교구에서는 알고있습니다. "

"그런데도 그를 도브톤으로 보냈습니다. "

 

교장은 교구와 대교구 관리들에게 반복해서 편지를 썼습니다.

시어슨 신부가 아이들에게 성적 접근하는 것, 

뿐만아니라 시어슨 신부가 학교 주변에서 총을 들고 다니는

폭력적이고 불안정한 행동도 경고했습니다.

 

그래엄 슬리먼 교장은 시어슨 신부의 위험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기위해

끊임없이 싸웠습니다.

 

그러나 슬리먼 교장의 희생은 아무런 결과를 이룰수 없었습니다. 

 

그는 사임했고 오히려 가톨릭 학교 체제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아무도 그에게 다른 일자리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시어슨 신부에 대한 고발로 인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몇 년 동안 슬리먼 교장의 정신 건강은 악화되었고 

가족의 경제력도 어려워졌습니다 

 

1998년 3월 그는 멜버른의 대주교였던 펠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교회가 자신을 어떻게 대했는지 썼습니다.

그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도 적었습니다. 

 

"시어슨 신부에 의해 저질러진 부도덕하고 부정직한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았을 때

매일 겪어야 했던 혼란과 고통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노력과 충성심에 대한 대가가 이것입니까? 지난 12년은 마치 지옥 같았습니다"

 

슬리먼 교장은 이제 퀸즈랜드의 한 부동산에 있는 캐러밴에서 살며 여전히 상담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 차례 답장이 오지 않던중 슬리먼 교장은 전화 한 통을 받습니다. 

 

대주교의 전화였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게 뭡니까?"

 

"도브톤에서 내가 취한 태도가 올바른 것이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해주십시오"

"모든 신문과 텔레비전, 라디오에서 해주십시오."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슬리먼 교장은 알지 못했습니다. 

펠 대주교가 1980년대 멜버른 보조 주교로 있던 당시 

시어슨 신부의 성추행에 대한 고발내용을 알고 있었으나

이를 조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2016 3월 왕립위원회는

펠 대주교와 다른 주교들이 1989년 시어슨 신부의 성추행건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펠 대주교는 위원회에 가톨릭 교육청이 그것을 처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행동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펠 대주교는 말합니다. 

"나는 나에게 조사자 역할이나 기능이 있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주로 학교에서 교육청이 맡은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펠 대주교는 1989년에 시어슨에 대한 사건과 불만 사항 목록을 받았는데,

이에는 시어슨 신부가 아이들 앞에서 동물을 학대했고

아이들 화장실을 사용했다는 보고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2020년에 발표된 결과에서 위원회는 말합니다.

 

 " 펠 주교는 멜버른의 보조 주교로서

그 지역의 가톨릭 공동체 아이들의 복지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항들을 조합하여 

시어슨 신부가 제거되거나 정직되거나,

적어도, 주장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의무였습니다. "

 

왕립위원회에 증언하며 펠 대주교는  말합니다. 

 "시어슨 신부에 대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행동했어야 했음을 인정합니다. 

"슬리먼 교장은 무례하고 어려운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

"물론 정확한 것은 슬리먼  교장이 올바른 행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시어슨 신부는 2009년 아동 성추행 혐의를 받기전에 사망했습니다.  

 

슬리먼 교장은 이제 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 브레던의 상해 전문 변호사가 대리인으로 있습니다.

 

슬리먼 교장이 시어슨 신부의 성추행 건에 대하여 정당하게 문제제기 했으나

가톨릭측은 아무행동도 취하지 않았고

이로인해 슬리먼 교장의 교육경력은 단절되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내 전체 가족이 고통받았고, 여기에는 손자들까지 포함됩니다.

어느 날 내 아홉 살 손녀가

 '할아버지 엄청 유명해요'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축구 선수로서 능력이 있어서 그러는 줄 알았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슬리먼이 교장으로 있을 때,

그는 교구와 대교구 관리들에게 많은 문제점들을 제기했으나

그들은 그를 "집착적"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슬리먼 교장은 학교에서 보낸 시간의 99%

아동 성추행 사제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려고 노력하는 데 사용했다고 말합니다.

 

 나는 교회의 관리자들에게 학생들을 위해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교장으로서의 나의 의무는 '학생들의 안전 보호'입니다.

당신들은 엄청난 늑대를 학교에 넣었습니다.

그게 정신나간 이유입니다."